📌 이재명 대통령은 정조의 억강부약과 격쟁행차를 강조하며 국민 중심 정치의 길을 밝혀 왔습니다.
📌 이제는 정조가 청나라와 펼친 ‘실리외교’를 본받아, 중국·북한 외교의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출처: 엠키타카 MKTK (2025.7.31) / 영상 바로가기
1. 대통령의 정조 언급 – 억강부약과 격쟁행차
이재명 대통령은 공직자 인사 원칙을 설명하면서 “똑같은 조선이라도 선조 때는 수백만 백성이 죽음으로 내몰렸지만, 정조는 동아시아 최대 부흥을 이끌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정조의 개혁 사례 중 하나로 ‘격쟁행차’를 언급했습니다.
정조는 억울한 백성이 직접 임금에게 호소할 수 있도록 행차 시 징을 들고 다니며 백성이 징을 치면 즉시 사안을 확인하게 했습니다. 이 장치는 지방 관리의 비리를 차단하고 백성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제도적 장치였습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반영하려는 정치를 강조하면서, 정조의 ‘억강부약(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도와야 한다)’ 정신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있습니다.
2. 정조의 또 다른 교훈 – 실리외교
그러나 정조의 리더십은 인사 개혁과 비리 척결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국제 질서 속에서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실리외교를 추진했습니다. 당시 많은 사대부들이 여전히 명나라의 유산을 숭상하며 청을 ‘오랑캐’로만 보았지만, 정조는 냉정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질서를 받아들였습니다.
정조는 청나라와의 외교에서 안민(安民)·보국(保國)을 지향했습니다. 그는 건륭제의 칠순·팔순, 즉위 50·60주년 같은 대규모 행사에 사신을 빈틈없이 파견하여 양국 간 신뢰를 공고히 했습니다. 조선 사신들은 청에서 서양의 천문·역법, 서양화법, 그리고 신지식과 신기술을 배워 왔고, 이러한 지식은 정조의 국정 운영에 반영되었습니다.
그 결과 수원 화성 건설, 용주사 후불탱화, 김홍도의 회화 등은 단순한 문화유산을 넘어, 정조의 실리외교가 만들어낸 가시적 성과였습니다. 명분에 집착하는 대신 실리를 추구한 정조의 외교전략은 조선이 청과 우호적 관계를 맺으면서도 문화적으로는 자부심을 유지할 수 있게 했습니다.
오늘날 일부 극우 세력이 반복하는 중국은 오랑캐
, 중국 쎄쎄론
같은 반중 프레임은 당시 사대부들의 구호와 닮아 있습니다. 그러나 정조는 현실과 국익을 직시하며 ‘외교는 백성을 위한 것’이라는 원칙을 실천했습니다. 지금 한국이 중국·북한 외교를 풀어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반드시 되새겨야 할 교훈입니다.
📚 출처: 이영관, 「정조 대왕 군주론」 – 실리를 추구한 정조의 외교전략,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 2023.11.07
3. 현대적 시사점 – 외교의 시험대
윤석열 정권은 한미일 공조에만 치중하면서 중국과의 관계를 사실상 파탄 냈습니다. 그 결과 무역·경제·외교 모든 분야에서 한국의 부담은 커졌습니다. 또한 극우 세력은 ‘중국 쎄쎄’ 같은 조롱으로 반중 감정을 애국심으로 포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외쳤던 ‘오랑캐론’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제 이재명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는 중국과 북한 문제를 어떻게 실리적으로 복원하고 관리하느냐입니다. 정조가 보여준 ‘실리외교’의 교훈을 현대에 적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 결론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한 정조의 억강부약과 격쟁행차 정신은 국내 개혁의 토대라면, 이제 정조의 실리외교는 대외정책의 지침이 될 수 있습니다. 정조가 보여준 것처럼, 외교는 명분이나 이념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실리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지금 한국 외교는 정조의 길을 따르느냐, 아니면 다시 인조의 길을 반복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 참고 자료:
- 《정조실록》 – 격쟁, 북학 관련 교지
- 박제가, 《북학의》
- 정약용, 《경세유표》
- 학계 연구: 「정조와 북학파의 대외정책」 (한국사학회)
- 엠키타카 MKTK (2025.7.31) 이재명 대통령 발언 영상
댓글
댓글 쓰기